
류경수라는 배우의 강렬함
류경수라는 배우를 참 좋아합니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를 시작으로 최근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드라마 <선산> 역시 류경수 배우 때문에 기대하게 된 작품입니다. 오랜만에 따뜻한 여름날 기분 좋은 피크닉을 다녀온 기분입니다. 영화 <한낮의 피크닉>을 보았기 때문이죠. 이 영화도 2019년 작품으로 개봉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류경수 배우 때문에 보게 되었습니다. 배우가 가진 힘은 정말 엄청난 것 같습니다. 글쎄요, 광고까지는 모르겠습니다. 배우가 좋다고 해서 광고 상품을 구매하진 않습니다. 브랜드 이미지에는 영향을 줄 것 같습니다.
옴니버스 영화의 매력
영화 <한낮의 피크닉>은 옴니버스 형태의 영화입니다. 김한라, 강동완, 임오정 세 감독의 단편들을 모아서 하나의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사실 류경수 배우가 출연했다는 것 말고도 영화 이름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왠지 따뜻하고 설레는 영화일 것 같은 기분이었죠. 첫 번째 단편인 '돌아오는 길엔'이 알고 보니 전에 봤던 영화 <내가 사는 세상>의 감독의 작품이어서 반갑기도 했습니다. 그때도 주연을 했던 남자 배우가 이번 영화에도 등장하는 걸 보니 또 반가운 마음이었고요.
가족끼리 왜 그래
전작 <내가 사는 세상>이 청춘들의 고군분투 현실 연애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면 이번 '돌아오는 길엔'은 가족을 소재로 합니다. 서로를 향한 날 선 대화들을 보면서 가족은 왜 그럴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왜 가장 서로를 아프게 할까? 마음이 아프면서도 저에게도 참 어려운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어려워하고 있는 부분이라 공감이 되면서도 영화 자체에서 큰 울림은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굳이 영화 속에서 공감 가던 부분을 고르자면 엄마는 엄마의 인생을 살라고 말하던 민규의 대사가 생각납니다.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건 자식이라고 부모에게 기대지 말고, 부모라고 자식에게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민규도, 민규의 엄마도 모두 각자 자신의 인생을 살기를 응원합니다. 나의 행복은 누구도 챙겨주지 않습니다. 좀 더 이기적으로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일부 연기력이 부족한 배우들이 눈에 띄어서 극의 흐름과 몰입을 방해하는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나만의 바람을 기다리다
다음으로 제가 좋았던 작품은 <대풍감>입니다. 류경수 배우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냐고요?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닙니다. 오히려 배우 때문에 기대하고 봤다가 작품이 별로라면 더욱 실망하게 되니까요. <대풍감>은 김한라 감독의 영화입니다. 극 중 재민이라는 인물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재민은 군대를 제대한 후에 이렇다 할 직업이 없이 근근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갑니다. 그 자리마저도 늘 위험합니다. 언제 자신의 자리를 잃게 될지 두려움에 떨고 있죠. 고통은 한꺼번에 찾아온다는 말이 재민에게도 유효합니다. 위태롭게 살아가는 재민에게 어머니의 위암 발병 소식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재민은 아버지를 찾아 울릉도로 갑니다. 재민의 아버지는 오랜 시간 연락이 끊인 상태였습니다. 재민은 혼자가 아닙니다. 친한 친구인 찬희와 연우가 그의 곁을 함께합니다.
나의 대풍감은 언제인가
세 친구는 우연히 숙소에서 대풍감에 대해 듣게 됩니다. 대풍감은 바람을 기다리는 절벽을 말합니다. 바람이 이끌려 가는 곳이죠. 새로운 배를 만들게 되면 돛을 달고 닻줄을 메어놓습니다. 그리고 기다리던 바람 대풍감이 불면 그 닻줄을 끊었다고 합니다. 그럼 대풍감에 이끌려서 빠르게 육지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고 말이죠. 소식이 끊인 재민의 아버지도 대풍감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 같습니다. 어딘가로 이끌려 가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재민과 찬희, 연우는 지금 자신의 인생에서 불어닥칠 대풍감을 기다리고 있는 청춘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출발지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선이 그어진 위치조차 저마다 다릅니다. 하지만 도착지만큼은 원하는 곳으로 선택하고 싶다던 재민의 대사가 기억에 남습니다. 또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내가 자신 있게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말해도 될지 고민이라던 친구 찬희의 대사에도 공감이 갔습니다. 그들의 대화는 지금 제가 친구들과 나누는 고민과 한숨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공감과 위로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좋은 친구들이 있다는 것
저는 이미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입니다. 20대가 왜 찬란한지 30대의 끝자락이 되어 보니 알 것 같습니다. 위태로운 청춘이라고 누군가는 말하지만 그들이 걱정되거나 측은하지는 않습니다. 언제라도 재민, 찬희, 연우 세 친구가 함께라면 각자에게 불어올 대풍감을 기다리며 잘 해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세 친구를 보며 저의 친구들을 생각했습니다. 혼자서는 살 수 없습니다. 제 곁은 지키는 친구들을 생각하며 저도 힘을 내봅니다. <대풍감>을 보면서 김한라 감독의 차기 작품이 무척 기대가 됐습니다. 아쉽게도 이 영화 이후 후속작은 눈에 띄지 않네요. 지켜보고 싶은 사람이 생긴다는 건 참 설레는 일입니다.
친구라는 이름의 이기심
마지막 세 번째 작품인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역시 친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임오정 감독의 작품인데요, <대풍감> 속 친구들과는 다르게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의 친구 우희는 정말 별로였습니다. 제 주변에 우희 같은 친구가 없다는 게 다행으로 느껴질 정도로 말입니다. 물론 이 또한 성향 차이라 저희 기준이니 우희 같은 친구가 반가운 사람도 있겠죠. 수년간 연락 한번 없이 얼굴도 보지 않고 지내다가 갑자기 '너희 집에서 좀 지내야겠어'라고 말하는 친구가 달가운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래도 될까?"라고 물어봤다면 얘기는 달라졌을 겁니다. 물론 누군가 필요할 때 전화할 상대가 있다는 건 고마운 일입니다. 한데 그 친구라는 사람의 캐릭터가 영 별로였으니 영화도 그렇게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세상엔 참 다양한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게 이 영화의 한 줄 감상평입니다. 그리고 나는 어떤 친구인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가족, 친구, 다양한 사람들과 떠난 세 번의 피크닉 후에 느낀 점은 역시 좋은 사람이 되자. 좋은 사람들을 오래오래 곁에 두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주변 사람들에게도 말해주고 싶습니다. "언제든지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