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할 이유
시대를 관통하는 명언들이 있습니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고운 법이고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며, 여자도 남자 하기 나름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어떤 배우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생각지 못한 인생이 펼쳐집니다. 내면에 숨어 있던 악마가 튀어나오다가 어느 순간에는 내가 이렇게 천사였나 싶을 정도로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영화 <최악의 하루>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에는 총 세 명의 남자가 등장합니다. 각기 다른 그들을 대하는 여주인공 은희의 모습도 남자들만큼이나 천자만별입니다.
은희는 어떤 사람일까?
그들은 은희의 각기 다른 시절을 함께 합니다. 한 남자는 오늘 생전 처음 본 사람이고, 한 사람은 현재 만나고 있는 사람, 다른 한 사람은 과거의 남자입니다. 은희는 세 남자를 대할 때 각기 다른 사람처럼 새로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눈빛부터 말투, 표정, 웃음까지 모두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았죠. 머리는 왜 또 묶었다가 풀었다가 그러는 걸까요? 여자들은 마음에 드는 남자, 잘 보이는 남자가 있을 때 머리를 자주 만진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런 이유일까요? 표정만이 아닙니다. 행동이나 걸음걸이, 걷는 속도까지 다릅니다. 이 영화는 은희가 하루 동안 만난 세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왜 저러는 걸까?
영화는 시종일관 잔잔하게 흘러갑니다. 김종관 감독의 작품인 <조금만 더 가꺼이>가 떠오르기도 했고 <한여름의 펀타지아>라는 영화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이와세 료가 출연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여주인공의 캐릭터에 공감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행동이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되지 않으니 은희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가웠습니다. 아마도 누군가 제 표정을 해석한다면 “엔간히 마음에 안 드나 보다” 생각할 것 같습니다.
연극은 무대 위에서만 하자
은희는 배우가 꿈입니다.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인지 거짓말을 밥먹듯이 합니다. 극 중 남자 주인공들한테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면서 드는 영화 제목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최악의 하루>보다는 <최악의 여자>에 어울리는 스토리였기 때문이죠. 아무튼 영화를 보는 내내 삐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보던 내게 현오와 은희 그리고 운철이 한자리에서 딱 마주친 장면은 통쾌함 그 자체였습니다. 박장대소라는 게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영화관에서 크게 웃었습니다. 은희뿐만이 아닙니다. 극 중 세 남자 캐릭터 또한 극과 극을 달렸습니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아프다
어느 인터뷰에서 본 것처럼 <최악의 하루>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마음의 병에 걸린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현재 남자 친구인 현오는 연예인 병에 걸렸습니다.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데 호들갑이죠. 과거에 만났던 운철은 요즘 세상이라면 위험한 스토커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처음 만난 료헤이 역시 어딘가 어둠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은희는 그런 남자들에게 그저 최선을 다해 자신의 배역을 연기합니다. 그녀에게 진심 혹은 진정성이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저 필요할 때 상황에 맞는 거짓말을 꾸며내 상황을 피하려고만 하죠. 료헤이를 대하는 태도는 잘 모르겠습니다. 왠지 료헤이를 만나는 순간에는 배우의 가면을 벗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그는 곧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것이고 그렇다면 평생 다시 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해서 일까요?
은희야 힘내
영화 <최악의 하루>를 보고 위로와 공감을 느낀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마도 그건 은희가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연극을 할 수밖에 없어서 그렇겠죠. 그런 상황들이 우리의 인생 속에서도 찾아오니까요. 하지만 은희가 보낸 최악의 하루는 어쩌면 본인이 그렇게 만든 건지도 모릅니다. 영화의 재경이 된 서촌은 저도 정말 좋아하는 곳입니다. 평온하고 편안하죠. 은희가 걷는 남산은 저도 종종 걷던 곳이고 영화를 보는 내내 따라 걷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날이 좀 따뜻해지면 서촌이랑 남산을 걸어야겠습니다.
최악의 영화는 아니다
아무튼 <최악의 하루>를 보면서 남자든 여자든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는 교훈을 떠올려 봅니다. 사랑받기 위해 연극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람을 만나야겠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요. 글쎄요. 조금 더 의미를 찾아본다면 저에게도 특별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영화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게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장난하는 거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사랑 앞에서 우리는 진실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