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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행 - 이번 생은 처음이라

by 희희초초 2024. 1. 25.

좋아하는 배우들의 만남

조현철 배우와 김새벽 배우의 등장만으로도 기대가 되는 영황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처음 가는 지역을 두고 ‘초행길’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예상해 보면 처음 가는 길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좀 더 어렵게 느껴지네요. ‘풀을 밟으며 간다. 길이 아닌 곳으로 간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풀을 밟는 것과 길이 아닌 곳은 같은 의미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영화 <초행>을 보기 전부터 이 영화는 단순히 가보지 않은 곳 이상으로 많은 고난과 험난한 여정이 예상됩니다.

동거 7년 차 커플의 현실

남주인공 수현은 미술학원에서 강사로 일합니다. 여주인공 지영은 방송국 계약직 직원입니다. 이 둘은 벌써 7년 차 연인입니다. 지영의 집에서는 둘의 결혼을 서두르라고 재촉합니다. 이런 상황에 수현의 아버지는 칠순을 맞이하고 둘은 겸사겸사 인사를 드리러 갈 준비를 합니다. 영화의 큰 전개는 간단합니다. 큰 사건 사고 없이 몰입하게 되는 영화였습니다.

꼭 결혼을 해야 하나요?

결혼을 해야 하는 건 둘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둘이 벌어도 냉장고에는 계란밖애 없고 한 겨울이 오면 집에서도 수면양말과 패딩 조끼는 필수입니다. 동거 중인 두 사람의 집에서 온기라고는 서로를 향한 사랑뿐입니다. 그러니 쉽게 결혼이라는 걸 할 수가 없습니다. 동거와 결혼은 다르죠. 지영의 결혼을 재촉하는 부모님은 아마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으라고 하겠죠? 인생의 끝없는 숙제들에는 책임감이 따릅니다. 그 책임감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혹시 처음이세요?

우리는 살면서 많은 초행을 경험합니다. 영화 <초행>만 봐도 그렇습니다. 두 사람에게 동거 또한 처음이었을 것이고 지영의 상황에서는 남자친구 엄마, 즉 예비 시어머니와 전을 부치는 것도 처음이었겠지요. 예비 시아버지의 술주정도 처음 마주한 광경이라 당황스러웠을 것이고 이렇게 둘에게는 매 순간 초행을 경험합니다. 처음은 늘 어렵습니다. 당연히 망설일 수밖에요.

조금 헤매도 괜찮아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어른들에게 인사를 드리러 갑니다. 그런데 초행길이라 수현의 운전실력이 영 평소답지 않습니다. 이길 일까? 저길 일까? 마치 처음 운전을 배운 초보운전자처럼 어색하고 서툽니다. 어느 순간에는 사고가 나면 어쩌나 아슬아슬한 장면도 나옵니다. 끼어들기를 해야 할 때를 놓치기도 하고 결국 다시 먼 길을 돌아 길을 찾아갑니다. 하지만 지영은 수현을 탓하지 않습니다. 본인도 처음이라 잘 모른다고 말하며 수현을 위로합니다. 수현의 초행길에는 늘 지영이 함께 합니다. 그래서 참 든든했습니다.

공감대가 형성됐던 영화

영화라는 것을 망각할 만큼 자연스러운 영상이었습니다. 마치 유튜브에서 실제 연인의 결혼 준비 과정을 들여다본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조현철 배우와 김새벽 배우의 연기는 언제나 그랬듯 자연스럽고 과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지금은 평생의 반려자가 옆에 있지만 불과 몇 년 전이라면 수현과 지영처럼 저에게도 결혼은 숙제 같은 것이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지영의 눈물을 위로하던 수현의 대사가 기억에 남습니다. “나도 같이 울까?”라고 말하는 수현이 참 다정하게 느껴졌습니다. 살다 보면 울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그럴 때 수현 같은 사람이 곁을 지켜준다면 서로 보듬어 가며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영화 초반 지영과 엄마가 나누는 대화도 기억에 남습니다. 과연 저는 부모님께 자랑하고 싶은 딸일까요? 보이지 않는 구석 어딘가에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자식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도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초행길을 열심히 걷고 있을 모두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초행은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면 다시 돌아 나오면 됩니다. 풀을 밟으며 길을 만들고 있는 모두를 응원합니다. 이번 생은 처음이니까 그렇게 서로를 다독일 수 있는 세상이기를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장면도 참 좋았습니다. 조현철 배우와 김새벽 배우는 늘 그렇듯이 최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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