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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살의 신 - 교양 없는 어른들

by 희희초초 2024. 1. 27.

 

우연히 알게 된 보석 같은 영화

예전에 <방구석 1열>이라는 프로그램을 좋아했습니다. 평소 영화를 워낙 좋아하는데 추천받는 것도 한계가 있고 어떤 영화를 봐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럴 때 <방구석 1열> 프로그램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 영화도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알게 된 영화입니다. 이런 보석 같은 영화를 찾아준 프로그램에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대학살의 신>은 두 부부의 고상한 분쟁을 다룬 영화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초등학교 4학년인 재커리는 친구들과 다투다가 이툰의 앞니를 부러뜨립니다. 막대기를 휘둘렀는데 하필 그게 이툰의 앞니에 맞게 된 겁니다.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두 가정의 부부들이 한자리에 모이면서 영화는 시작됩니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낸시 부부와 페넬로피 부부는 겉으로 보기에는 참 고상한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죠. 아이들의 싸움을 해결하기 위해 모인 자리는 어른들의 싸움으로 번집니다. 한마디로 애들 싸움보다 더 유치하고 치사합니다. 교양 있는 어른의 모습으로 이성적인 대화를 나누며 분쟁을 해결하려고 하지만 사소하게 시작된 말싸움은 예상치 못한 결마를 맞이합니다. 시작이 정말 단순합니다. 아이들의 싸움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전개가 시작되고 시종일관 같은 공간에서 오로지 말다툼만 한다는 게 과연 재미있을까요? 그렇습니다. 굉장히 재미있게 본 영화입니다. 유치 찬란한 어른들의 시비 걸기가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어른이라고 다를 게 없으니까요. 
 

예상할 수 없는 전개

급기야 다른 부부를 향하던 비난의 화살은 각자의 배우자를 향합니다. 고상하고 고고한 아내는 어디로 가고 삿대질에 물건 던지기, 육탄전까지 그야말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됩니다. 비꼬는 말만큼 상대방을 화나게 하는 게 있을까요? 영화 속 두 부부는 그걸 참 잘합니다. 인간이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지 테스트를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낸시는 네 사람 중에 가장 이서적인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극으로 치닫자 낸시는 속이 부글거리고 마침내 시원하게 구토를 합니다. 이 집은 페넬로피 부부의 집입니다. 고상한 낸시는 남의 집 거실에 자신의 토사물을 시원하게 적셔줍니다. 이때부터 상황은 예상할 수없이 최악을 향해 달립니다. 
 

연극을 보는 것 같은 생생함

아이들의 다툼으로 시작된 대화의 자리는 서로의 배우자에게 서운했던 점이 폭발하는 자리로 바뀝니다. 앨런은 항상 업무 전화에 바쁜 남편이 불만이었고 페넬로피는 매 순간 남편인 마이클에게 서운한 마음이 쌓여갔습니다. 배우자를 향해 쌓였던 감정이 폭발하면서 갑자기 영화는 성별 싸움으로 바뀝니다. 과연 이 싸움에 끝은 있는 건지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이어집니다. 드디어 상황을 정리하고 자리를 피하려는 찰나 마이클이 이를 말립니다. 차 한 잔만 하고 돌아가라는 그의 설득에 앨런 부부는 다시 그 집으로 들어갑니다. 마치 작은 소극장에서 연극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집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이렇게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승자는 없다

끝은 어떻게 되었느냐고요? 누구도 이 게임에서 승자는 없었습니다. 모두 처참하게 무너지고 상처 입은 채로 전쟁은 끝을 맞이합니다. 어른들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화해의 자리에서 서로를 향한 비난이 폭발했고, 마주 않은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떨까요? 어른들을 그 지경으로 만든 아이들은 언제 다투었냐는 듯이 함께 어울려 시간을 보냅니다. 최근에 봤던 <슬픔의 삼각형>만큼이나 블랙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준 영화였습니다. 고상한 개싸움을 보면서 이 사람들 말싸움 실력 하나는 인정해 줘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유쾌한 풍자 코미디

찾아보니 실제로 연극이 원작이라고 하네요. 소극장에서 열린다면 한 번 제대로 감상해 보고 싶습니다. 80분간의 상영시간 동안 딴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을 정도로 몰입감이 뛰어난 작품이었습니다. 아이들의 다툼을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영화 <우리들>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맨날 싸우기만 하면 언제 같이 노느냐고 질문했던 꼬마의 말처럼 이 영화의 아이들도 그랬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니 나는 어떤 어른인가 생각하게 합니다. 유쾌한 풍자 영화를 찾으신다면 <대학살의 신>을 추천합니다.
 
 

대학살의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