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과 함께하는 삶
저는 서울 태생으로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울에서 살았습니다. 경쟁이 일상이었고 매일매일 치열한 시간을 보냈죠. 그 후 3년 전 결혼 후 남쪽나라의 소도시에서 살고 있습니다. 매일 마음만 먹으면 바다를 볼 수 있고 높은 건물은 찾기 힘듭니다. 젊은 사람들의 바쁨보다는 어르신들의 굽은 등을 더 자주 봅니다. 일자리만 있다면 이곳 생활이 무척이나 만족스럽습니다.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일상 속 여유와 여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늘 동경했던 삶이거든요. 그래서 이 영화가 참 반가웠습니다. 자연에 기대 살며 천천히 여유롭게 늙어가는 노부부의 일상이 보는 내내 흐뭇했습니다. 포스터에서도 행복이 묻어납니다. 벚꽃이 흐드러진 봄날 활짝 웃는 두 분의 웃음에 덩달아 미소가 번집니다.
달콤한 후르츠 맛 인생
<인생 후르츠>는 90세 할아버지와 87세 할머니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할아버지의 직업은 건축가였습니다. 할머니는 그야말로 슈퍼우먼입니다. 작고 왜소한 몸이지만 무슨 일이든 척척해내는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세상에 두 분의 나이를 합치면 177세라니 마음이 경건해집니다. 아마 두 분은 각자 혼자의 삶을 살았던 시간보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함께 한 세월이 훨씬 길었을 겁니다. 이제 고작 3년 차 부부인 저로서는 존경스럽게 느껴집니다. 노부부가 살고 있는 집은 무려 50년을 지낸 곳입니다. 집도 함께 나이가 들어가고 두 분의 많은 추억이 이 집과 함께 했을 겁니다. 제 나이보다 더 긴 시간을 보낸 집이라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집이라는 것을 넘어서서 굉장히 소중한 존재일 것 같습니다.
바쁘게 산다는 것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 집에서 과일과 채소를 키우며 시간을 보냅니다.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이나 먹고살기 위해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은 없습니다. 두 분에게는 모든 일상이 그저 감사한 마음과 즐거움입니다. 하지만 자연과 함께하는 삶은 생각처럼 여유롭지 못합니다. 수고한 만큼, 시간과 애정을 들이는 만큼 작물은 자라납니다. 반대로 돌보지 않으면 나무든 꽃이든 다 시들게 되죠. 노부부에게 자연을 돌보는 일은 기쁨입니다. 바쁘고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절대 지치거나 고단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태풍이 오기라도 하면 더 바빠집니다. 부러진 나뭇가지를 정리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이마저도 노부부에게는 행복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있다는 건 일종의 책임감과 성취감도 느끼게 하니까요.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사람
그 와중에 두 분은 사랑스럽기까지 합니다. 맛있는 생선을 먹어서 힘이 난다며 감사 인사를 담은 그림 편지도 씁니다. 생선가게 주인에게 주기 위해서요.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웃을 둔 생선가게 주인은 얼마나 든든할까요? 이웃을 향한 사소한 감사와 따뜻한 시선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 장면이었습니다. 저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마냥 행복한 모습만 담지 않았습니다. 설마설마하면서 봤는데 슬픔이 찾아왔습니다. 늘 그랬듯이 텃밭에서 자연과 함께 시간을 보낸 할아버지가 단잠에 빠지신 후 영원히 자연 속으로 떠나셨습니다. 심장이 철렁했고 안타까운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내면이 단단해야 한다
할아버지가 떠나고 혼자 남은 할머니가 걱정됐습니다. 수십 년을 함께 보낸 반려자가 떠나고 고령의 할머니가 괜찮으실까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씩씩하게 자신만의 속도로 일상을 살아가는 할머니를 보면서 안심이 되었습니다. 자연과 함께하는 일상이 할머니를 단단하게 만든 것 같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떠났지만 나머지 모든 것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나도 저렇게 늙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 같은 아내가 되어야겠다 다짐했습니다. 제 남편도 할아버지 같은 성품을 가졌으면 좋겠고요. 서로가 노력해야겠죠. 시소에 마주 보고 앉아 오르고 내리고 균형을 맞춰가는 것처럼요.
나만의 속도로 살기
다큐멘터리 속 특별히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습니다.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질 것이고, 그 후 땅은 비옥해지겠죠. 그 후에는 열매가 여물겠죠. 차근차근 자신들의 속도로요. 저도 그런 삶을 살고 싶다 다짐하며 후기를 마칩니다. 두고두고 꺼내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지금의 삶이 고단하고 지쳐있는 분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