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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 해피엔딩

by 희희초초 2024. 1. 14.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말하는 가족

가족을 이야기하는 영화는 망설여진다. 보고 나면 너무 아프지 않을까 고민된다. 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라면 안심해도 된다. 그의 영화는 언제나 가족을 말한다. <바마을 다이어리>에서는 새롭게 만들어진 가족을 이야기했고 <아무도 모른다>에서는 버림받은 가족을 이야기했다. <걸어도 걸어도>에서는 떠나버린 가족을 말하고 있고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는 갈라져 버린 가족을 말한다. 벌써 제작된 지 십 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시대를 관통하는 작품이다. 조금 늦게 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는 운명이 뒤바뀐 가족을 말하고 있다. 
 

아빠가 되는 게 무서워

처음 이 영화를 접한 건 2~3년 전이다. 당시 영화를 무척 좋아했던 친구가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그 친구는 남편이라는 존재의 무거움보다 '아빠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굉장히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친구와 이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나눈 결과는 "역시 아빠라는 이름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지만 좋은 아빠가 된다는 것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이 영화가 아니었다면 생각해 볼 수 없었을 문제였다.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평범한 두 가족의 이야기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들 케이타와 아내 미도리와 셋이서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꾸린 료타는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아빠다. 그럴싸한 대기업에 재직 중이고 좋은 집에 살면서 비싼 차를 탄다. 그는 이미 많이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늘 바쁘게 움직인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일상을 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어느 날 찾아온 소식 하나가 그의 삶에 거다란 폭풍우를 내리게 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 케이타가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유는 산부인과에서 아이들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충격적인 일이다. 하지만 료타가 처음으로 나직하게 내뱉은 말이 더 충격적이었다. '역시 그래서였군'이라는 말이다. 케이타는 료타와 많이 달랐다. 인생의 중요한 목표가 성공한 삶을 사는 것이고 최고가 아니라면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료타와 달리 케이타는 그저 안온하고 평온한 삶을 추구했다. 왜 경쟁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고 그저 착하고 순한 아이를 보면서 료타는 늘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정답은?

케이타의 피아노 발표회에서도 두 사람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실수가 많았던 케이타를 보며 료타는 아이를 꾸짖는다. 즐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피아노를 배우는 것도 케이타가 적극적으로 원해서가 아닌 그 집안의 내력이었다. 료타의 아버지부터 이어져온 단계별 수련에 불과했다. 피아노를 배우는 게 재미있느냐고 엄마가 묻자 단지 아빠가 칭찬해 주는 것이 좋아서 배우는 것이라고 말하는 케이타를 보며 너무나 측은했다. 케이타의 모습에서 나의 어린 시절, 혹은 지금의 나와 겹쳐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몹시 씁쓸했다. 
 

서로 다른 두 아빠의 사랑법

많은 고민의 시간을 보내고 결국 두 가족은 서로의 얼굴을 보게 된다. 마주 앉아 지금까지 키워온 아이들을 앞으로 어떻게 보살피면 좋을지 이야기한다. 두 가정은 살아온 환경과 살아갈 환경 모두가 극과 극을 보였다. 유다이는 료타의 친아들인 류세이를 키우고 있었다. 낡고 허름하고 작은 동네에서 전파사를 하면서 근근이 세 아이를 보살피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가진 것은 적었지만, 웃음만은 끊이지 않았다. 함께 몸을 부대끼고 놀고 아빠가 목욕도 시켜주면서 작은 집에서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가 보는 사람까지 행복하게 만들었다. 
 

돈 많은 부모 vs. 사랑 많은 부모

반면 위에서도 말했듯이 늘 최고가 되어야 하는 아빠 료타는 아빠로서 해줄 수 있는 최고의 교육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 믿는다. 부모가 만들어 준 혜택의 굴 안에서 아는 스스로 자립심과 독립심을 키워야 한다. 다른 아이보다 뛰어난 환경을 만들어줬으니 아이의 성과 또한 그래야 한다. 류세이에게 좋은 아빠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아빠다. 둘 중 누가 더 좋은 아빠일까? 선택할 수 있는 문제라면 나는 어떤 아빠를 선택할까? 아마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가슴은 후자라고 말하지만, 머리로는 요즘 시대를 살아가면서 환경을 무시할 수 없으니 물질적인 사랑과 정신적인 사랑이 치열하게 대립할 것이다.
 

피는 물보다 진할까?

결국 두 사람은 길러준 사랑이 아닌 낳은 사랑을 택하고 뒤바뀐 아이들을 원래대로 돌려놓기로 한다. 유다이의 집으로 간 케이타와 케이타의 집으로 간 류세이를 보면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이들의 적응 과정도 순탄할 리가 없었다. 전파사 집 아들이었던 류세이는 큰 방과 많은 장난감, 값비싼 음식들과 좋은 혜택을 받는 대신 자유로움과 사랑의 손길을 잃었다. 케이타는 어떨까? 료타와 다른 유세이 가족의 사랑 안에서 케이타는 고장 난 장난감처럼 시무룩할 뿐이다. 변화에 적응하기란 어린아이나 어른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그게 가족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아이에게 등을 보이는 아빠

좀처럼 평온이 찾아오지 않던 어느 날 결국 류세이는 가출을 감행한다. 류세이의 가출을 보면서 료타는 조금씩 달라지려고 노력한다. 물질적인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건지 노력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와 놀아주는 아빠가 되기 위해 낚시를 가고 총싸움을 하기도 한다. 또 어느 날은 과거 케이타가 늘 잠만 자고 등만 보이는 자신을 찍어놓은 사진을 우연히 발견하고 마침내 눈물을 흘린다. 아이의 눈에 비친 아빠는 그랬다. 료타에게는 그 사진 한 장이 큰 울림을 주었던 것 같다. 비로소 자신이 아빠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잘못해왔는지 깨닫게 된 듯하다. 
 

돌고 돌아 결국 끝은 통한다

여러 아픔의 시간을 보내고 두 가족은 결국 피로 만들어준 가족이 시간을 함께 보낸 가족을 이길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다시 원래의 바뀌었던 그대로 아이들을 돌려놓기로 한다. 다시 자신을 데리러 온 료타를 보고 도망치던 케이타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란히 이어진 두 갈래 길을 각자 걷던 아들과 아빠는 그 길 끝에서 만나게 된다. 료타가 비로소 진짜 아버지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시간이라는 추억이 쌓인다는 것

함께 보낸 시간이란 어떤 의미일까? 료타와 케이타는 피로 섞인 가족은 아니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분명 닮아가는 점이 있었을 것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떠올리며 영화를 보는 내내 여러 생각과 감정에 휩싸여서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두 남자가 하나의 길에서 만나는 장면에서는 '그래 이제 됐다'라는 안심과 함께 기쁨의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료타에게 간 류세이가 료타가 원하는 아들이 아니었던 점도 다행이라 생각됐다. 못된 생각이지만, 류세이가 경쟁심도 많고 늘 최고가 되려는 욕심이 있는 아이였다면 어쩌면 료타는 '역시 내 아들이었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 시대 모든 엄마, 아빠에게 추천

주변 사람들 하나하나 엄마, 아빠가 되어가는 지금 나는 어떤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어떤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가 고민이 되기도 했다. 이 세상 모든 부모가 된 사람들, 이제 될 준비를 하는 사람들, 될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묻고 싶다. 당신은 어떤 부모가 될 것인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