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이 두 개일 수 있을까
어느 때보다 불륜이 화두인 시대를 살고 있다. 어떠한 이유에서도 배우자가 있는 상태에서 다른 누군가에게 마음을 두는 것은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영화나 책, 드라마 속에서 만나는 스토리들이 가끔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런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의 후기를 쓸 때에는 언급 자체를 조심하게 된다. 영화 <런치 박스>도 그랬다.
영화나 책이 주는 즐거움
여주인공 일라는 남편과의 관계가 소원하다. 그녀는 남편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항상 정성스럽게 남편의 도시락을 싸서 배달원에게 보낸다. 이 부분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인도에는 이런 식으로 도시락을 전문으로 배달하는 사람들이 오천 명 이상 있다고 한다. 물론 수년 전의 통계이고 지금은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도 달라졌을 수도 있다. 세상에는 정말 생각하지 못한 다양한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이 있구나 생각했는데 도시락 배달부는 정말 생소했다. 영화나 책을 접하는 재미가 바로 이런 부분이다. 내 좁은 세상이 넓어지는 느낌이다. 영화 <런치 박스>를 보면서 인도라는 나라의 문화나 생활방식을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도시락으로 시작된 사랑
사고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본다. 일라의 도시락이 잘못 배달되어 사잔이라는 남자에게 도착한다. 그는 매우 외로운 사람이다. 항상 근처에 위치한 식당 도시락을 주문해서 먹던 사잔은 늘 그랬듯이 도시락을 받는다. 그는 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도시락을 맛있게 먹는다. 반면 일라는 자신이 만든 도시락이 남편에게 배달되지 않은 걸 알게 된다. 일라는 도시락에 편지를 넣는다. 그렇게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된다.
편지 한 통이 주는 위로
일라의 남편은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 남자 주인공인 사잔의 아내는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일라는 가정적인 아내였다. 매일 아침 정성스럽게 남편의 도시락을 싸는 일이 그녀에게는 행복이었다. 반면 사잔은 늘 외로웠다. 매일 밤 집으로 돌아가서 텅 빈 집에 앉아 옆집의 도란도란한 저녁식사를 바라보며 부러워했다. 그런 사잔에게 일라의 도시락은 온기가 담인 밥상이었다. 정성이 가득 담긴 묵직한 도시락은 사잔의 외로움을 덜어갔다. 그들은 하루 한 번 도시락에 편지를 담아 소통한다. 도시락을 쌀 때 가장 행복한 여자와 도시락을 먹을 때 가장 행복한 남자, 두 사람은 서로를 통해 일상의 공허함을 조금씩 채워간다.
용기를 낸 사람과 돌아선 사람
먼저 용기를 낸 건 일라였다. 그녀는 사잔을 만나고 싶어 한다. 이들의 감정은 사랑이었을까. 사잔도 일라를 만나기 위해 용기를 낸다. 하지만 약속한 장소에 사잔은 도착하지 않는다. 자신과의 만남을 원하는 일라의 편지를 받고서 두근거리던 사잔은 설레는 마음으로 욕실 거울 앞에 선다. 하지만 그 거울 앞에는 이미 늙은 중년의 남자가 서 있을 뿐이었다. 늙은 사람의 몸에서 나는 소위 '사람 냄새'가 자신의 몸에서 나고 있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그는 노약자 우대, 혹은 자리를 양보 받는 나이가 된 것이다. 반면 일라는 여전히 젊고 아름다웠다. 그런 일라에게 사잔은 자신을 드러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가 가진 환상을 깨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사잔은 말한다. '어제의 로또를 사는 사람은 없다'라고 일라에게 말한다.
생각이 많아지는 영화
누구에게나 젊음이 있었고 늙음은 찾아온다. 그러니 그 순간을 더 알차게 즐기고 절실하게 원해야 한다. 두 사람의 감정선을 따라가면서 나 역시 공감되고 감정이 이입되는 부분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스며드는 두 사람을 보면서 사잔의 마지막 편지에 공감이 가면서 마음이 아팠다. 셀 수 없이 많은 점심 도시락이 매일 아침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각자의 직장으로 옮겨지는 장면은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부탄에 가고 싶어 하는 일라에게 함께 가자고 말했지만 결국 그녀의 손을 잡지 못한 사잔이 너무 측은했다. 일라는 부탄으로 떠났다. 그 후 사잔은 어떻게 지냈는지 두 사람이 결국 다시 만나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 해피엔딩이라는 걸 바라게 되는 영화였다.
현재를 사랑하자는 교훈
고독하고 쓸쓸한 영화이다. 하지만 슬프고 절망적이진 않았다. 아직은 일라의 나이를 살고 있는 나에게도 곧 찾아올 사잔의 나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였다. 괜스레 욕실에 가서 거울을 봤다. 어느새 생긴 눈가의 주름과 푹푹 꺼지는 눈가를 보면서 지금의 나이 들어감을 슬퍼하지 말고 오늘을 축복으로 여기자는 생각을 했다. 자주 접했던 인도풍의 밝고 경쾌한 느낌과 다르게 깊고 따뜻한 영화였다. 사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