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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한국 영화 - 밀정, 줄거리, 결말

by 희희초초 2024. 1. 11.

영화 속 역사 이야기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증거 중 하나는 역사를 대하는 태도 혹은 시각에서다. 과거 군산으로 떠난 여행도 그랬다. 군산이라는 도시가 일제 강점기 위대한 독립운동의 거점지였다는 걸 알게 되면서 맛있는 거, 예쁜 곳만 찾아다니려 했던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밀정>을 보고 난 후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역사에 대한 인식이 바로 서야 한다는 일종의 책임감, 혹은 의무감 같은 게 심장을 뜨겁게 했다. 문제는 이 뜨거워짐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이나 영화, 각종 미디어를 통해 이런 이슈를 지속적으로 접해야 한다. 잊었던 것을 자꾸만 끄집어내 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배우 송강호와 감독 김지운의 만남

이름만으로도 믿음이 가는 두 사람의 조합이기에 줄거리나 포스터를 찾아보지도 않고 바로 극장으로 갔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놀랐다. 너무 모델 같은 배우들의 등장 때문일까. 극 초반 박희순 배우를 통해 몰입된 감정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동그랗고 촌스러운 안경까지 완벽하게 소화한 의열단 핵심 멤버 공유를 보니 왠지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다. 내내 '카누'라는 브랜드가 머릿속을 떠다녔다. 예전에 배우 박혁권이 모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말하길 자신에게 들어오는 모든 CF를 거절한다고 했다. 그 이미지가 배우로서 연기하는 데 각인될 수 있어서다. 공유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역사 속 인물에 대한 완벽한 옷을 입기에는 광고 속 이미지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했다. 꽤 묵직한 역사적 인물을 연기하기에는 기존 캐릭터가 너무 강하다. 초반에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어서 아쉬웠다. 김지운 감독이야 뭐 말이 필요 없다. <달콤한 인생> 이후 나에게는 믿고 보는 감독이 되었다.
 

적인가, 동지인가, 밀정은 누구인가

영화 <밀정>은 의열단을 해체시키기 위한 음모와 배신, 서로의 정체를 숨긴 채 위험한 관계를 이어가는 인물들. 잡아야 하는 사람과 잡히면 안 되는 사람들 사이의 긴장감과 암투, 교란, 위장 등이 긴장감 있게 그려진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맞서 싸우는 의로운 일을 하는 단체인 의열단과 그런 의열단을 뿌리 뽑기 위한 일본의 만행들을 그린다. <밀정>은 그 시절 실제로 벌어졌던 황옥경부 폭탄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실화 바탕의 영화이다. 이 또한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사건이다. 그렇기에 한 장면도 허투루 넘길 수가 없었고 마치 내가 겪었던 일처럼 집중하며 숨죽일 수밖에 없었다.
 

하시모토 엄태구의 등장

자꾸만 향긋한 커피 생각에 집중이 안 되던 그때 하시모토(엄태구)의 등장은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쇳소리로 말하는 그의 첫 대사에 나는 '이것 봐라?' 생각하면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온전히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과 영화 내내 찌푸려진 미간까지 완벽하게 하시모토에 빙의되어 있었다. 그의 등장과 함께 다시 긴장감이 고소되고 후반 기차 안 장면부터는 그때 그 시설 독립운동가들의 처절한 삶을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일본 경찰 vs. 독립운동가

내가 그 시대에 존재했다면 내 이름의 역사의 어느 페이지를 장식했을까. 여러 생각과 반성과 웅장함이 느껴지는 영화였다. 조선인이면서 일본 경찰로 살아가는 이정출(송강호)이 되지 않을 거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마음만은 의열단원이 되어 리더 김우진(공유)을 보좌하고 끝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애국자가 될 수 있을까. 그 시대를 겪어본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도 쉽게 입을 놀려서는 안 된다. 위대한 독립운동이 아니더라도 살면서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끝없이 이어진다. 그럴 때 내 선택의 기준은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정출은 또 다른 밀정이 되어 의열단의 폭탄으로 친일파들과 고위직 파티에 거사를 치른다. 김우진은 감옥에서 이정출의 거사가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안심하며 눈을 감는다.
 

영리하게 활용한 영화적 장치

흔히 공포영화가 그러하듯 긴장감을 고소시킬 때 소리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화 <밀정>은 그런 부분을 잘 건드렸다. 삐거덕 문소리와 또각또각 구두 굽소리 그리고 독립운동가들이 고문을 당하는 순간 흘러나오는 재즈의 아이러니가 그랬다. 덕분에 다양한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은 물론이고 감독상, 작곡상, 미술상에 이르기까지 평단의 찬사는 대단했다. 이런 영화들이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할 이유다. 현시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꼭 봐야 할 영화로 추천한다.
 
 

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