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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윗 프랑세즈 - 불륜이라 더 아프다

by 희희초초 2024. 1. 14.

 

우연히 만난 영화 한 편의 울림

미셸 윌리엄스 주연의 로맨스 영화는 더욱 애틋하게 기억된다.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의 마고 역할을 너무 완벽하게 소화하기도 했고, 더 아픈 기억은 그녀가 히스 레저의 전 부인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었다. 마침 시간이 맞는 영화가 이것뿐이었고 그래서 그냥 시간이나 떼우자 싶어 들어간 극장에서 본 영화가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시작은 우연히였지만 이후에도 다시 보러 갔고 세 번이나 본 영화가 되었다. 나는 왜 이 영화를 세 번이나 봤을까? 그 답은 공감이 아닐까 싶다. 전쟁의 참혹한 비극을 세심하게 그려낸 배경과 남녀 주인공의 애틋한 사랑을 보면서 공감이 됐던 것 같다. 
 

전쟁 속에서도 사랑은 꽃 핀다

이 영화는 크게 전쟁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내면 이야기를 그린다. 스토리는 이렇다.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를 배경으로 한다. 독일은 마침내 프랑스를 점령했고 난민들은 작은 시골 마을인 뷔시로 몸을 숨긴다. 하지만 독일군의 손길은 뷔시까지 뻗었고 이 마을의 귀족들은 자신을 집을 독일군 숙소로 내어주게 된다. 어느 시대나 어느 지역이나 윗사람들은 왜 하나같이 그럴까. 뷔시 시장은 자신에 집에 머물게 해야 할 독일군을 뇌물을 쓴 끝에 소작농의 집으로 보내버린다. 이때 미셸 윌리엄스가 연기한 루실의 시어머니는 자신이 데리고 있던 소작농을 쫓아버리고 그 자리에 파리의 피난민을 살게 한다. 집세를 2배 이상 받는 조건으로 말이다. 여느 역사가 그러하듯이 가진 자들은 어떻게든 도망쳐서 살아날 궁리를 하는 사이 못 가진 자들은 더욱 피폐한 삶을 산다. 전쟁 중에는 얼마나 더 추악한 현실을 마주하게 될까. 
 

인간은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가

독일이나 한국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장기간 이어진 전쟁에 피폐해진 뷔시 주민들은 마치 칭찬받고 싶은 아이처럼 이웃에서 행해진 비밀스러운 일들을 독일군 장교 브루노에게 고발한다. 누군가는 남의 물건을 탐하고 누군가는 간음을 하고 누군가는 유대인을 숨겨주고 있다고 말이다. 남을 밟고 나는 위로 올라가기 위해 남을 죽여야 내가 살기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추악한 선택을 하진 않는다. 독일군 장교 브루노의 책상에는 그러한 은밀한 발고들이 쌓인다. 이 부분을 보면서 성악설, 성선설,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인간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 말이다.

피아노 선율은 사랑을 타고

여기까지는 전쟁의 참상에 대한 이야기였다. 영화는 이 안에서 그려지는 금기된 남녀의 사랑을 보여준다. 독일군 장교 브루노는 시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루실의 집에서 머물게 된다. 루실의 남편은 전쟁터로 떠났다. 그녀에게 남은 가족은 시어머니뿐이다. 브루노가 처음 루실의 집에 오던 날에도 루실은 브루노를 감히 쳐다볼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시어머니가 그녀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자유가 허락된 시간은 오직 서재에서 피아노를 연주할 때였다. 그 피아노는 아버지가 물려주신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더욱 애틋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독일군 장교 브루노가 바로 그 서재에서 지내게 되고 하필 그는 밤마다 피아노를 연주한다. 루실은 매일 밤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소리를 그대로 지나치지 못한다. 까치발을 들고 서재 앞에 숨어 그의 연주 소리를 듣는다.
 

서로를 알아본 남과 여

차가운 브루노의 표정과 남편을 떠나보내고 매 순간 경계하는 눈빛으로 가득했던 루실, 그들은 점차 서로에게 무장해제되고 있었다. 루실은 음악을 전공했다. 브루노는 군인이 되기 전에 작곡가로 활동했었다. 루실의 옆자리에 앉기 전에도 "앉아도 될까요?"라고 먼저 동의를 구하던 브루노와 그런 그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두 걸음 떨어져 간격을 유지했던 루실의 사랑이 참 애틋하게 느껴졌다. 차가운 표정을 가진 브루노는 슬은 마을에 버려진 개 한 마리도 그대로 두고 보지 못하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루실은 어떨까? 그녀는 시어머니가 몰래 숨겨둔 음식을 가난한 소작농에게 몰래 가져다주는 사람이다. 침략한 남자와 침략 당한 여자는 실은 아주 닮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피아노 소리가 이어질수록 브루노와 루실은 아픈 시절을 겪으며 유일하게 서로를 비춰주는 존재가 되었다. 

금지된 사랑의 끝

금지된 사랑은 오래 가지 못했다. 브루노의 부대가 다른 도시로 이동하게 되었고 두 사람은 아픈 헤어짐을 겪게 된다. 브루노는 떠나던 날 루실을 위한 선물을 준비한다. 자신이 만든 악보를 루실의 피아노 위에 올려놓고 떠난다. 그 곡은 오로지 루실 한 사람 만을 위해 작곡한 Suite francaise'의 악보였다. 조심하라는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여자를 보면서 '사랑해'라는 말보다 더 진심이라는 생각이 든 건 왜일까. 많은 말과 많은 시간, 많은 추억을 나누지 못했지만 그들의 사랑이 충분히 공감이 가고 마음이 아팠다. 떠나가는 루실을 헛헛하게 바라보는 브루노의 시선을 따라 영화는 쓸쓸하게 끝난다. 
 

시대를 관통하는 힘

이 영화는 원작 소설이 있다. 이렌 네이로프스키의 소설이 원작인데 작가는 실제 유대인이었다고 한다.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하니 너무 아프고 쓸쓸하다. 그녀는 자신이 그곳에서 생을 마감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자신이 겪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이야기들을 가지고 소설을 썼다고 한다. 다만 소설은 미완성이다. 그녀가 소설의 끝부분을 쓰기 전에 수용소로 끌려갔기 때문이다. 다행히 마지막을 직감한 그녀는 끌려가기 전에 딸에게 소설 원고를 건넸고 극적으로 이 이야기는 세상에 나왔다. 피아노라는 공통분모 때문인지 드라마 <밀회>가 떠오르기도 했다. 세상 사람들의 잣대로 보면 단순히 불륜으로 치부될 일이지만, 한숨 한 번 크게 내쉬지 못한 혜원을 보면서 루실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일은 단언할 수 없고, 직접 겪어보지 않고 말할 수 없다. 쉽게 만나고 헤어지고 관계를 맺고 끝내는 지금의 세상에서 사랑이란 뭘까? 진지한 질문을 던지게 한 영화였다.
 
 

스윗 프랑세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