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시대 소공녀의 이야기
미소는 참 단단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미소는 위스키 한 잔과 담배, 그리고 남자친구만 있다면 부러울 게 없습니다. 바퀴벌레가 득실거리는 추운 방에 살지만, 백발 머리를 감추기 위해 주기적으로 한약을 먹어야 하지만 미소는 괜찮습니다. 영화 <소공녀>는 취향의 힘으로 살아가는 미소의 이야기입니다. 집세도 오르고 일자리는 없어지고 벼랑 끝으로 몰린 미소가 대학 시절 밴드 친구들을 찾아 신세 지며 벌어지는 블랙코미디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블랙코미디의 진수
미소의 직업은 3년 차 프로 가사도우미입니다. 친구 집에서 청소를 하며 일당을 벌어 근근이 살아갑니다. 쌀이 떨어져 친구 집에서 쌀을 얻어 가더라도 좋아하는 위스키와 담배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검은 봉지 가득 얻은 쌀을 들고 걸어가는 미소의 발걸음 뒤로 쌀이 줄줄 샙니다. 봉지에 구멍이 났던 겁니다. 이 장면은 영화의 복선인 것 같습니다. 미소의 앞날에 대한 맥거핀인 것 같습니다. 미소에게는 오래된 남자친구 한솔이가 함께 합니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함께 밤을 지내려고 시도하지만 추위를 견디지 못합니다. 집에서도 옷을 겹겹이 껴 입고 “봄에 하자”는 말을 할 정도입니다. 웃기면서도 슬픈 장면이었습니다.
취향을 지키기 위해 포기한 것
물가는 점점 오르고 집세도 올라갑니다. 담배값도 오르고 위스키 가격도 올라갑니다. 하지만 미소의 시급은 그대로입니다. 미소는 짐을 쌉니다. 취향을 지키기 위해 집을 포기하는 미소의 선택에 아마 많은 사람들은 한심해할 것입니다. 살 곳이 없어진 미소는 대학시절 밴드로 함께 활동하던 친구들을 찾아갑니다. 하룻밤 잠자리를 얻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그 시절 함께라서 행복했던 그들이었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고 각자의 사정이 생겼습니다. 여기서도 이 영화의 개그 코드가 이어집니다. 안타까운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게 합니다. 특히 록이네 집에서 벌어지는 일은 키득키득 웃음이 새어 나옵니다. 늙은 아들이 미소와 이루어지길 바라는 부모님은 둘을 한 방에서 재울 계략을 꾸미고 다음 날 일어나 보니 미소는 그 집에 갇혀 있습니다. 집을 보러 간 미소와 동행하는 부동산 아줌마도 웃음 포인트입니다.
모든 선택에는 이유가 있다
부잣집으로 시집간 정미는 겉으로는 미소를 반기지만 곧 속내가 드러납니다. 집도 없이 담배를 피우고 위스키를 마시는 미소를 한심하다고 나무랍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미소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렇지 않을까요? 점점 더 물질은 중요해지고 집 한 채를 마련하기 위해 우리가 포기해야 할 것은 너무나 많습니다. 취향이 대수인가요? 먹고살기도 힘든데 철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저는 미소를 응원하고 싶습니다. 이제 한약까지 포기한 미소는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해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소에게는 담배와 위스키가 남았습니다. 누구도 타인의 삶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은 없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존중되어야 합니다.
바깥세상 보다 따뜻할 텐트 집
장례식장에 모인 밴드 친구들 사이에 미소는 없습니다. 모두 미소의 소식을 묻지만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한강변에 자리 잡은 작고 예쁜 텐트 하나가 비칩니다. 아마도 미소는 그 안에서 쉬고 있을 것 같습니다. 인생은 한강물 아니면 한강뷰라는 말이 생각나는 장면이었습니다. 누군가는 한강물에 빠질 수도 있지만 미소는 한강뷰를 선택했습니다. 돈 벌러 먼 나라로 떠난 한솔이 돌아오는 그날 그들만의 작은 보금자리에서 따뜻함을 나누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