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산>때문에 결제한 넷플릭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선산>을 보기 위해 넷플릭스를 결제할 정도로 이 작품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오컬트라는 소재를 워낙 흥미로워하기도 하고 연상호 감독의 전작들도 재미있게 봤기 때문입니다. 호불호가 심한 감독이라고 하는데 그전 작품들은 저에게 모두 좋은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특히 <지옥>이라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도 저에게는 굉장히 인상적인 소재로 기억됩니다. 그래서 오래전 <선산>을 촬영한다고 했을 때부터 개봉 날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날에 맞춰서 넷플릭스 정기결제를 신청했습니다.
큰 기대는 큰 실망을 낳고
첫 시도는 실망적이었습니다. 허리가 안 좋아서 침대에 누워 태플릿 pc로 보고 있었는데요, 그만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기대했던 것에 비해서 실망감이 너무 컸습니다. 제가 <선산>을 기대했던 건 작품 자체의 소재나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류경수 배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선산>이 개봉하고 한 달 여가 흐른 지금 류경수 배우의 연기 자체에도 호불호가 갈린다고 하니 안타깝습니다. <선산>의 줄거리는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텐데요. 연락이 끊인 작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유일한 선산의 상속자인 여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오컬트?
제가 이 드라마에 실망한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먼저 오컬트라는 소재가 미끼였다는 것이 컸습니다. 홍보 영상이나 드라마 전반에서 무시무시한 굿판 장면이 나오고 시종일관 음산한 분위기와 류경수 배우가 연기한 김영호는 굿당 같은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마치 주술적인 이야기나 민속신앙을 바탕으로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질 것 같았죠.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오컬트는 단순히 그럴듯한 포장지에 불과했고 사실 이 이야기는 가족을 소재로 한 이야기였습니다. 미스터리는 전혀 없었습니다.
충격적인 반전과 허무한 전개
또 하나, 스토리가 빈약합니다. 이야기의 복선도 없고 맥거핀도 힘이 없습니다. 계속 무슨 일인가 벌어질 듯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이제 좀 오컬트적인 요소가 나오나 싶다가도 떡하니 범인이 존재하고 반전이라는 것도 너무 충격적입니다. 충격적인 반전이라는 건 긍정적인 의미지만, <선산>에서 충격적이라는 표현은 그렇지 않습니다. 반전을 만들어내기 위한 반전인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관객들이 놀라지 않을까?'라는 목표로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느낌이 강했습니다. 이제부터 결말이자 스포일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선산>에서 남겨진 유산을 두고 윤서하(김현주)와 대립관계를 형성하는 김영호(류경수)는 극 중 이복남매인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윤서하 고모의 아들이자, 윤서하 아빠의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즉 근친상간으로 낳은 자식이었던 것이죠. 자신은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았고 아들에게 선산을 남겨주고자 윤서하의 고모가 꾸민 일이었습니다.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스토리텔링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실망적이었습니다. 반전을 드러내는 방식이나 살인사건을 추적해 가는 방식이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사실은..."이라며 모든 숨겨진 비밀을 친절하게 다 알려줍니다. 김영호와 그의 엄마를 보살펴 준 무당이 그랬고, 같은 동네에 살았다는 가게 주인이 그랬습니다. 하나씩 사건의 진실을 마주하는 게 아니라 몇몇 사람의 친절한 설명으로 드라마의 진실이 바나나 껍질 벗기듯 드러납니다. 굉장히 허탈하고 긴장감이 없었습니다.
물 없이 고구마만 잔뜩 먹은 느낌
위에서 류경수 배우의 연기에 대해 잠시 이야기했는데요. 류경수 배우가 연기한 김영호가 과하게 힘이 들어갔다고 느껴지는 건 그의 연기력 문제가 아니라 시나리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영호는 비밀을 간직한 인물이었고 시종일관 그가 모든 살인사건의 범인처럼 보이게 만들어놨습니다. 외모부터 말투, 행동까지 어딘가 어색하죠. 보는 내내 답답했습니다. 주술적인 행위를 하고, 윤서하 앞에서는 "누나... 누나"만 연발하고, 선산을 갖고 싶다는 건지 누나를 지키고 싶다는 건지 그 캐릭터 자체가 애매하게 설정되어 있었습니다. 등장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합니다. 그러나 작품 자체에서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결말은 반쪽짜리 해피엔딩이었습니다. 틀어진 관계는 회복되고 선산은 그대로 지켜졌습니다. 윤서하는 안정된 모습이었고, 김영호는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겠죠? 마지막 장면에서 윤서하가 근친상간이었던 자신의 아버지와 고모를 한 묘에 묻어주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