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영화를 발견한 순간
오랜만에 넷플릭스에서 좋은 영화 한 편을 발견했습니다. 배우 이설이 주인공인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탈북민을 소재로 합니다. 이설이 연기하는 주인공 한영은 탈북민입니다. 한영은 어렵게 한국으로 입국해서 관광 통역 안내사 자격증을 취득합니다. 이제 한영에게는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는 걸까요? 역시 인생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탈북민의 신분으로 한국에서 적응하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평범한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도 살기 힘든 세상인데 더군다나 탈북민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하는 세상이 쉬울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한영은 힘을 냅니다. 넘어져도 오뚝처럼 일어나 다시 우뚝 서기 위한 준비를 합니다.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 바보인 세상
영화는 관광 통역 안내사 면접을 보는 풍경에서 시작됩니다. 또박또박 당당하게 면접에 임하는 한영의 모습에서는 앞으로의 삶에 대한 설렘이 느껴졌습니다. 관광 통역 안내사로 한영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은 간단합니다. 쇼핑 강매를 해서는 안 되고 자신의 자격증을 타인에게 대여해서도 안 됩니다. 한영은 당당하게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답합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날 무렵 한영은 그 일들을 골라서 하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한국에서 발을 붙이고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쇼핑을 강요하고 종국에는 자격증을 대여해 주면서 돈을 법니다. 정직하게 살아서는 남들만큼 돈을 벌 수 없습니다. 초심을 잃고 방황하는 한영을 탓할 수 있을까요?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도 한영에게 돌을 던질 수 없을 겁니다.
그저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한영의 바람은 소박합니다. 한국에서 남동생과 엄마와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바람을 이루기가 왜 그렇게 힘든 걸까요? 유일한 친구 정미마저 이민 준비를 하고 함께 한국으로 온 남동생은 연락이 두절됩니다. 한영은 늘 관광 통역 안내사 일을 다닐 때마다 영상을 찍습니다. 나중에 다 같이 살게 될 그날을 기다리며 어머니에게 보여드릴 영상입니다. 연락이 끊인 남동생은 어쩌다 연락이 오면 돈을 달라는 말을 합니다. 한영에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한영의 신변보호를 해주는 담당 경찰 태구는 어떤 사람일까요? 필요 이상으로 친절한 태구이지만 그건 순전히 자신의 일을 한 것일 뿐입니다. 선의를 위해 손을 내민 태구의 감정을 한영은 오해합니다. 이성적인 감성이라고 착각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또 혼자가 된 한영
이제 한영의 손을 잡아 줄 사람은 없는 것처럼 뵙니다. 태구마저 전근을 가 버리고 한영은 홀로 남았습니다. 쇼핑 강매를 하고 물건 가격을 속여서 팔았던 한영은 동료의 신고로 직장을 잃습니다. 다시 시작하고 싶지만 탈북민을 향한 시선은 곱지 않습니다.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한영은 지쳤습니다. 생김새는 같지만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고 억양도 다른 한영은 언제쯤 완벽하게 '한국인'이 될 수 있을까요? 영화는 한영이 결국 짐을 싸서 떠나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어떻게 보면 열린 결말이기 때문에 해피엔딩이 될 수도 있고 관점에 따라서는 세드엔딩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침을 기다리는 어스름한 새벽에 캐리어를 끌고 길을 나서는 한영을 보며 다시금 그녀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해 봅니다.
당신의 인생을 응원합니다
이설이라는 배우는 한영이라는 탈북민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습니다. 이전 작품에서도 주의 깊게 지켜보던 배우였습니다. 늘 자연스러운 연기가 일품이거든요. 잘은 모르지만 중국어 발음도 좋고 이번에도 연기가 자연스럽습니다. 한영의 친구인 정미 역할을 맡은 배우의 연기도 좋았습니다. 한영은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면서 살고 있을까요? 부디 어느 하늘 아래 살아가든 그녀가 좀 많이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을 위해 살면서 믿을 수 있는 사람과 함께였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은 관광과 다릅니다. 가이드란 없습니다. 자유롭게 훨훨 날아갈 한영의 인생을 기대합니다. 극장에서 다시 보고 싶은 영화였습니다. 텅 빈 극장에서 나와 조금은 쓸쓸하게 어둑어둑한 길을 걸으며 그때 한영의 기분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누구라도 한 번쯤 보면 좋을 영화입니다. 특히 타인에 대한 선입견을 갖거나 색안경을 쓰고 사람을 바라본다는 게 얼마나 무섭고 아픈 일인지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습니다.